0-1, 그리고 익숙한 풍경
6월 25일 멕시코 몬테레이. 한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1로 졌다. 비기기만 해도 조 2위로 32강에 오를 수 있는 경기였지만, FIFA 랭킹이 36계단 낮은 상대에게 무릎을 꿇었다. 슈팅 8-13, 1승 2패 조 3위. 이제 한국은 다른 조의 결과를 기다리며 와일드카드 한 장을 바라봐야 한다.
경기 직후 비판의 화살은 빠르게 한 곳으로 모였다. 두 경기 무득점이던 주장 손흥민을 선발에서 빼고, 이재성까지 동시에 제외한 홍명보 감독의 ‘승부수’다. 손흥민이 월드컵에서 교체 명단으로 시작한 것은 2014년 브라질 대회 이후 처음이었다. 경기 당일 ‘홍명보 즉각 경질’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한 해설가는 “왜 월드컵에서 실험을 하느냐”며 눈물을 보였다. 홍 감독 본인도 “모든 것은 감독 책임”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풍경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익숙함이 문제의 핵심이다.

‘2014’를 12년째 복습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것은, 이 장면을 우리가 이미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2014년에도 한국 축구는 같은 자리에서 무너졌고, 그때도 화살은 감독 개인에게 쏟아졌다. 12년이 지났지만 바뀐 것은 감독의 이름뿐, 실패의 구조는 그대로다. 배울 시간은 충분했는데, 한국 축구는 같은 실수를 거의 그대로 반복했다.
반복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곳은 그라운드가 아니라 대한축구협회(KFA)다. 월드컵을 앞둔 4년 주기의 감독 교체는 본래 ‘더 나은 감독으로 발전한다’는 취지였지만, 언젠가부터 그저 4년마다 새 감독, 새 틀을 짜는 ‘리셋’의 반복으로 변질됐다. 제대로 된 분석과 철학 없이 여론에 떠밀린 땜질 선임이 거듭되고, 매번 새로 시작하니 매번 처음의 실패로 돌아온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협회가 “그들만의 카르텔에 잠식됐다”는 강도 높은 비판까지 나왔고, 정몽규 회장은 이번 월드컵 이후 사퇴를 선언한 상태다.
시스템이 장악하면, 현실이 편집된다
거대한 조직이 한 분야를 오래 장악하면, 그 조직은 현실을 ‘보여주는’ 장치가 아니라 ‘편집하는’ 장치가 되기 쉽다. 실패가 닥칠 때마다 책임은 가장 눈에 띄는 개인 — 그라운드의 감독과 선수 — 에게 돌아가고, 그 책임 전가가 끝나면 정작 구조 자체는 손대지 않은 채 다음 4년을 맞는다. 우리는 ‘감독이 문제였다’는 결론에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이 더 깊은 곳의 문제를 가린다. 가장 조용한 왜곡은 이렇게 작동한다 — 진짜 원인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식으로.
손흥민을 넣었느냐 뺐느냐의 논쟁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 논쟁만으로 끝낸다면, 우리는 4년 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감독의 이름을 넣어 같은 문장을 다시 쓰게 될 것이다. 0-1이라는 스코어는 한 경기의 결과지만, 그 경기를 만든 조건은 12년에 걸쳐 천천히 쌓여 왔다.

남은 가능성, 그리고 진짜 숙제
한국의 32강행은 이제 자력으로 결정할 수 없다. 48개국 체제에서 조 3위도 토너먼트에 오를 길은 남아 있지만, 다른 조 3위 팀들과의 승점·골득실 비교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초조한 며칠이 이어진다. 설령 와일드카드라는 행운이 주어지더라도, 오늘 드러난 반복의 구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운에 기댄 진출은 다음 실패를 잠시 미뤄줄 뿐이다.
진짜 숙제는 스코어가 아니라, 12년째 같은 실패를 만들어 온 시스템을 정면으로 다시 보는 일에 있다. 감독을 바꾸는 것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 — 어쩌면 오늘 0-1이 가장 비싸게 알려준 교훈이 그것이다.

경기 외적인 이야기 하나. 시스템이 가려 온 자리, 사다리 밖에서 지워진 재능을 정면으로 다룬 이야기가 있다. 미르저널이 연재 중인 「8번 레인의 유령」은 거대 시스템이 국가대표를 ‘생산’하는 시대에, 그 바깥에서 홀로 시작하는 흙수저 소년 한서준의 성장담이다. 변두리 수영장의 레인 하나에서 힘이 아니라 효율로, 매뉴얼이 아니라 자기만의 한 수로 물을 가르는 소년의 이야기는, 오늘 같은 날 우리가 무엇을 ‘실력’이라 불러야 하는지 되묻게 한다. (상단 메뉴 ‘감성 웹툰’ / ‘연재소설2’)
참고: 2026 FIFA 월드컵 A조 한국 0-1 남아공(2026.6.25, 몬테레이), 슈팅 8-13, 한국 1승 2패 조 3위, 와일드카드 대기. 손흥민·이재성 선발 제외 논란, 홍명보 감독 경질 청원. 대한축구협회 구조 비판 및 정몽규 회장 월드컵 후 사퇴 선언 보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