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하영(33)이 가계의 친일 행적을 둘러싼 공방 속에 드라마 촬영 도중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 촬영이 일시 중단됐다. 방송가와 대중문화계 전반으로 파장이 번지는 가운데, 법률적 개인 책임주의와 역사적 정의 실현을 요구하는 국민 법감정이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촬영 막바지 터진 악재… SBS “교체 없이 완주”
하영은 8월 13일 SBS 드라마 ‘승산 있습니다’ 현장에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눈물을 흘렸고, 제작진은 몇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 뒤에야 작업을 재개했다. 논란이 불거진 10일 직후 맞이한 생일(11일) 행사도 조용히 지나치는 등 현장 분위기는 극도로 경색된 상태다.
방송사 측은 여주인공 하차나 재촬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체 분량의 90%가량을 이미 촬영해 약 3주 뒤 크랭크업을 앞둔 데다, 막대한 추가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작품이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작이고 방영 시기도 3·1절을 낀 내년 2월로 잡혀 있어, 향후 협찬 유치 난항과 시청자 반발 등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앞서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관립 의료기관에 재직하며 일제 통치 기구에 협력한 이력과 일제 고위 관료 가문과의 혼인 내력이 담긴 역사 문헌이 거론되면서 거센 비판이 일었다. 이에 기업들은 하영이 출연한 광고를 잇달아 비공개로 전환했고, 방송 플랫폼도 관련 콘텐츠 노출을 멈추며 거리두기에 들어갔다.
헌법상 연좌제 금지 vs 불법 수익 원상회복
온라인 공간에서는 “후손에게 조상의 과오를 전가하는 현대판 연좌제”라는 옹호론과 “친일 기득권의 역사적 책임을 외면할 수 없다”는 비판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법리적으로 헌법 제13조 제3항은 친족의 행위로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연좌제를 엄격히 금한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2005년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대해 2011년 합헌 결정을 내리며 헌법적 경계를 명확히 그었다(2007헌바16 등). 당시 헌재는 친일재산 환수가 후손 개인을 처벌하는 연좌제가 아니라, 민족을 배반해 거둔 부당이득을 국가에 되돌려 역사적 정의를 바로세우는 ‘물적 청산’이라고 판단했다. 즉 현행 법체계는 형사·신분상 책임은 철저히 행위자 개인에게 한정하되, 불법 축적된 유산의 박탈이라는 물적 정리는 정당하다고 본다.

가해국 독일과 피식민 피해국 한국의 구조적 차이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대중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는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에서 비롯한다.
2차 대전 가해국 독일은 연방기본법상 법치국가 원리에 기초한 ‘개인 책임 원칙(Schuldprinzip)’에 따라 조상의 죗값을 묻는 ‘지펜하프트(Sippenhaft·연좌제)’를 전면 배격한다. 대신 정부와 민간 기업이 100억 마르크를 공동 출연해 ‘기억·책임·미래(EVZ) 재단’을 설립해 강제동원 피해를 공식 배상하고, 나치 당적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해 성찰하는 ‘기억 문화’를 제도화했다. 과거사 왜곡이나 나치 찬양을 하지 않는 한 후손 개인의 공적 활동을 문제 삼지 않는 배경이다.
반면 한국은 피식민 지배국으로서 일제에 부역한 소수 특권층과 피지배 다수 민중으로 나뉘었다. 더욱이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강제 해산되면서 사법적 단죄가 좌절된 역사적 상흔이 깊게 남아 있다.
따라서 대중이 유명인의 친일 가계에 보이는 민감한 반응은 단순한 감정적 비난을 넘어, 미완으로 남은 과거사 청산을 향한 상징적 교정 요구로 읽힌다. 개인에게 조상의 과오를 법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으나, 식민 권력 유착으로 형성된 가문의 유산을 대하는 공인의 역사 인식과 태도에 대해서는 사회적 검증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