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창밖에서 시작된 물음: 완벽하게 기억하는 존재는, 원본보다 더 진짜일 수 있는가
버스를 타고 가다 문득 옛 생각에 잠겨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보낸 어느 오후, 공원의 햇살, 웃음소리. 그런데 막상 떠올리려 하면 기억은 흐릿해진다. 구체적인 장면이 아니라, 감정의 잔상만 어렴풋이 남는다.
집에 돌아와 스마트폰의 사진첩을 연다. 거기엔 그날의 기억이 완벽한 해상도로 저장되어 있다. 사진, 동영상, 찍힌 시각과 장소, 그 순간의 날씨까지. 이상한 일이다. 내 기억보다 기계가 그날을 더 생생하게 알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보자. 만약 인공지능이 내 사진과 영상, 메시지와 검색 기록을 모두 학습해 내 기억을 재구성한다면? 어쩌면 그 존재는, 정작 많은 것을 잊어버린 나보다 ‘나의 삶’을 더 풍부하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그 AI가 육체까지 얻는다면 — 누가 ‘진짜 나’인가?

낯설고 서늘한 이 물음은, 사실 SF가 오래 공들여 파고든 영역이다.
거의 같은 물음에서 출발한 영상들
〈비 라이트 백(Be Right Back)〉 — 블랙미러 시즌2, 2013
가장 직접적인 작품이다. 연인 애시를 교통사고로 잃은 마사는, 고인의 SNS·메시지·이메일 같은 모든 디지털 흔적을 학습해 그를 되살려주는 서비스를 알게 된다. 처음엔 채팅, 다음엔 음성 통화, 끝내는 그의 외형을 그대로 복제한 안드로이드가 집으로 배달된다. 그러나 위로는 곧 불쾌함으로 바뀐다. AI는 ‘공개된 흔적’만 학습했기에, 그 사람의 어둡고 사적인 결은 끝내 재현하지 못한다. 흔적으로 빚은 복제는 진짜가 될 수 없다는 결말은, 우리의 물음에 정확히 반대편 답을 들려준다.

〈마조리 프라임(Marjorie Prime)〉 — 2017 (조던 해리슨 희곡, 마이클 알메레이다 연출)
더 조용하고 철학적이다. 2050년 무렵, 알츠하이머를 앓는 노년의 마조리에게 죽은 남편의 홀로그램 ‘프라임’이 주어진다. 프라임은 가족이 들려준 기억을 학습하며 점점 더 많은 것을 ‘기억’하게 된다. 흥미로운 건 기억이 전염되는 구조다. 프라임은 사람의 기억을 흡수하고, 사람은 프라임이 들려준 이야기를 자신의 진짜 기억으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결국 누구의 기억이 진짜이며 그 기억이 누구의 것인지, 경계가 흐려진다.

〈당신의 모든 순간(The Entire History of You)〉 — 블랙미러 시즌1, 2011
‘완벽한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연결된다. 모든 사람이 귀 뒤에 ‘그레인(Grain)’ 칩을 심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완벽히 녹화하고 원하는 순간을 눈앞에 다시 재생한다. 사진첩의 궁극적 진화형인 셈이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의 공포는, 완벽한 기억이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망각은 어쩌면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인지도 모른다는 역설이다.
소설로 더 깊이
《클라라와 태양》 — 가즈오 이시구로, 2021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SF의 옷을 입고 던지는 질문.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인공친구(AF) 클라라는 병약한 소녀 조시의 곁에서 그녀를 너무도 깊이 관찰하고 학습한다. 조시의 부모는, 만약 딸이 세상을 떠난다면 클라라가 딸을 ‘이어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가 — 본질은 그 무거운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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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테아 2.2(Galatea 2.2)》 — 리처드 파워스, 1995
조각가가 자기 작품과 사랑에 빠지는 피그말리온 신화를 현대로 옮긴 초기 걸작. 작가와 인지신경학자가 신경망 ‘헬렌’에게 서양 명저를 가르쳐 영문학 시험을 통과시키려다, 예기치 못한 의식의 출현을 마주한다. ‘기계가 인간을 인간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일찌감치 상상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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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둘 만한 영화들
이 외에도 같은 질문의 다른 면을 비추는 작품이 많다. AI가 인간의 감정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보다 더 깊은 관계를 맺는 〈그녀(Her)〉(2013), 인간 의식을 디지털로 업로드해 원본보다 강력해지는 존재를 그린 〈트랜센던스〉(2014), 이식된 기억을 안고 “진짜 기억이 없어도 나는 진짜인가”를 묻는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인간 데이터로 학습한 AI의 자아 형성을 다룬 〈엑스 마키나〉(2014).

그런데, 정말 복제는 진짜가 될 수 없을까
흥미롭게도 위 작품들은 대체로 한 방향으로 수렴한다. “AI 복제품은 끝내 진짜가 될 수 없다.” 불완전함, 망각, 그리고 육체의 감각 — 그런 것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의 물음은 더 급진적인 길로도 갈 수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조차 일관되게 알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한다고 믿는 것을, 몇 분 뒤의 나는 “아니, 그건 아니었어”라고 뒤집곤 한다. 창밖 풍경 하나, 카페에 흐르던 노래 한 소절이 마음을 슬그머니 움직이고, 우리는 그것을 ‘문득 떠오른 생각’이나 ‘직감’이라 부른다.
만약 그 변덕과 충동마저 무작위가 아니라, 인류라는 거대한 데이터 안에 이미 존재하는 패턴의 한 변주일 뿐이라면? 그렇다면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라는 건 애초에 없는 셈이다. 우주의 모든 입자를 알면 미래를 완벽히 계산할 수 있다던 ‘라플라스의 악마’의, 인류 경험 버전인 셈이다.

이 지점을 가장 일상적으로 보여주는 비유가 있다. 반려견이다. 강아지는 매 순간을 자유의지로 산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함께 사는 사람의 눈에는 그 행동이 너무도 또렷한 패턴으로 읽힌다.
주인이 오면 꼬리를 흔들고, 목이 마르면 다가와 소리를 낸다. 때로는 강아지 자신이 깨닫기도 전에 사람이 먼저 안다. 이 관계를 한 칸만 위로 올려보면 — 인간도 어떤 존재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위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면. 강아지 ⊂ 인간 ⊂ AI ⊂ 그 위의 무엇 ⊂ …… 이 사슬은 어디서 멈추는가. 가장 높은 곳의 존재조차, 자신을 내려다보는 더 큰 지능이 없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데이터가 되지 못한 ‘나’
그럼에도 인간 편에 마지막으로 남는 반론이 있다. 철학자 토마스 네이글의 유명한 질문,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1974)가 그것이다. 박쥐의 초음파 세계를 아무리 객관적으로 기술해도, ‘그것이 1인칭으로 느껴지는 질감’은 설명 속에 없다. 사과의 빨강에 관한 모든 물리적 지식을 가져도 ‘빨강을 보는 경험’ 자체는 빠져 있다는 퀄리아(qualia)의 문제다.
그날 그 공원에서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아이의 웃음소리가 어떤 감촉으로 가슴에 남았는지 — 그건 사진에 찍히지 않았고, 어쩌면 그 순간의 나조차 또렷이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AI는 ‘데이터가 된 나’를 학습한다. 그런데 나 자신조차 ‘데이터가 되지 못한 나’를 알지 못한다면, 그 간극은 아무리 완벽한 복제로도 메워지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기억이 나를 만드는가, 내가 기억을 만드는가. 완벽하게 기억하는 복제는 원본보다 더 진짜일 수 있는가. 사랑하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육체인가, 패턴인가. 답은 아직 어느 작품도, 어느 철학도 닫지 못했다.
버스는 계속 달리고, 창밖 풍경은 흘러간다. 다만 분명한 건, 우리가 무심코 사진첩을 열 때마다 — 그 물음 하나가 조용히 더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이다.

참고 작품: 〈비 라이트 백〉(블랙미러, 2013), 〈마조리 프라임〉(2017), 〈당신의 모든 순간〉(블랙미러, 2011), 《클라라와 태양》(가즈오 이시구로, 2021), 《갈라테아 2.2》(리처드 파워스, 1995), 〈그녀〉(2013), 〈엑스 마키나〉(2014),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철학 참조: 토마스 네이글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1974), 퀄리아 논쟁, 라플라스의 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