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48개국·12개 조·104경기. 새 포맷의 구조와 그 이면을 뜯어본다.
2026년 6월 11일, 멕시코시티의 아스테카에서 공이 굴렀다. 미국·캐나다·멕시코가 함께 여는 이번 월드컵은 숫자부터 낯설다. 48개국, 12개 조, 104경기. 1998년 프랑스 대회 이후 28년을 이어온 32개국 체제가 막을 내리고, 본선 무대가 단숨에 16개국 더 넓어졌다. 단순히 팀이 늘어난 게 아니라 대회의 골격 자체가 바뀌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설계됐는지 차근차근 짚어본다.
1. 골격부터 다시 그렸다
기존 32개국 대회는 4개국씩 8개 조, 총 64경기였다. 2026년은 4개국씩 12개 조(A~L), 총 104경기다. 경기 수가 40경기나 늘었다. 개최지도 사상 최대 규모다. 미국이 11개 도시에서 78경기, 멕시코와 캐나다가 각각 3개·2개 도시에서 13경기씩을 나눠 치른다. 16개 도시, 3개국, 한 달 반.
가장 큰 구조적 변화는 ’32강(라운드 오브 32)’의 신설이다. 종전엔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곧장 16강이었지만, 이제 그 앞에 한 라운드가 더 생겼다. 토너먼트가 한 단계 깊어졌다는 뜻이고, 이는 곧 우승팀의 여정이 길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 진출 셈법 — 조 3위도 살아남는다
조별리그에서 각 조 4팀이 한 번씩 맞붙어 세 경기를 치르는 건 예전과 같다. 달라진 건 ‘통과의 문’이다.
| 구분 | 진출 팀 |
|---|---|
| 각 조 1·2위 (12개 조) | 24팀 자동 진출 |
| 조 3위 중 성적 상위 | 8팀 추가 진출 |
| 합계 | 32팀 → 32강 |
12개 조의 3위 12팀 가운데 성적이 좋은 8팀이 살아남는다. 1승만 거두고도, 때로는 1승조차 없이도 32강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약팀에게는 ‘한 번의 이변’이 곧 생존으로 이어지는 길이 열린 셈이고, 강팀에게는 조 3위라는 안전망이 생긴 셈이다. 다만 이 방식은 부작용도 안고 있다. 어느 조 3위가 어느 자리로 가는지가 모든 조 경기가 끝나야 확정되기 때문에, 일부 팀은 자신의 32강 상대를 대회 막판까지 알지 못한 채 기다려야 한다.
3. FIFA가 ‘3팀 조’를 버린 진짜 이유
흥미로운 대목은, FIFA가 처음 내놓았던 설계도는 지금과 달랐다는 점이다. 당초 안은 3개국씩 16개 조였다. 팀은 똑같이 48개국인데 조를 더 잘게 쪼개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안은 폐기됐다. 이유는 단 하나, 담합의 위험이다.
3팀 조에서는 마지막 경기 때 한 팀이 반드시 쉰다. 그러면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두 팀은 ‘서로 어떤 결과를 내야 둘 다 살아남는지’를 정확히 알고 경기에 들어간다. 축구사에 악명을 남긴 1982년 ‘히혼의 수치’가 바로 그 장면이었다. 서독이 오스트리아에 1-0으로 이기자 두 팀이 나란히 진출하고 알제리가 탈락했는데, 양 팀이 마치 약속한 듯 공만 돌리던 후반전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FIFA는 결국 1994년 이후 줄곧 검증돼 온 4팀 조로 회귀했고, 각 조의 마지막 두 경기를 같은 시각에 동시에 킥오프하도록 못 박았다. 두 경기가 동시에 진행되면 상대 경기 결과를 보며 수위를 조절하는 담합이 원천적으로 어려워진다. 화려한 확장 뒤에, 40여 년 전의 교훈이 설계 원리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4. 우승까지 8경기 — 길어진 여정의 무게
새 포맷에서 우승팀은 8경기를 치러야 한다. 2022년 카타르 대회의 7경기보다 한 경기가 늘었다. 32강이 끼어들면서 토너먼트 단계가 하나 더 추가된 결과다.
한 경기 차이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한여름 북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이동과 더위까지 겹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승까지 가는 팀일수록 체력 소모와 부상 위험, 그리고 ‘한 번의 삐끗’이 곧 탈락으로 이어지는 토너먼트 변수에 더 오래 노출된다. 더 많은 경기는 더 많은 드라마를 뜻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피로와 이변의 가능성을 뜻하기도 한다.
5. 돈과 명분, 그리고 ‘dead rubber’ 논쟁
확장의 동력은 결국 둘이다. 명분과 돈.
명분 쪽은 분명하다. 더 많은 나라가 세계 무대를 밟는다. 그동안 본선의 벽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던 대륙과 국가들에게 16장의 추가 티켓은 실질적인 기회다. 축구의 외연이 넓어지고, 새로운 시장과 팬이 유입된다.
돈 쪽도 분명하다. FIFA는 이번 확장으로 중계권·스폰서·입장권을 합쳐 약 10억 달러의 추가 수입과 약 6억 4천만 달러의 추가 순익을 전망한다. 경기가 늘면 팔 것도 늘어난다.
반면 비판의 핵심은 ‘질의 희석’이다. 회의론자들은 초반 라운드에 승부가 이미 결정된 ‘죽은 경기(dead rubber)’와 일방적인 경기가 늘어날 것을 우려한다. 대회가 길어지고 이동이 많아지면서 인프라·교통·폭염·티켓 같은 운영 리스크도 커진다. 요컨대 “더 많아진 것이 더 좋아진 것은 아니다”라는 반론이다. 양쪽 다 일리가 있고, 어느 쪽이 옳았는지는 대회가 끝나봐야 안다.
6. 한국에게 — A조, 그리고 48개국 시대의 셈법
한국은 개최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체코와 함께 A조에 묶였다. 개최국이 포함된 조라는 점에서 분위기와 일정 면의 변수가 적지 않다.
거시적으로 보면, 48개국 체제는 한국 같은 ‘본선 단골이되 우승 후보는 아닌’ 팀들에게 미묘한 양날의 검이다. 조 3위 안전망과 32강 신설로 토너먼트 진입 자체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정상에 닿으려면 더 많은 경기를 이겨내야 한다. 16강이 곧 ‘성공’이던 시대의 셈법은, 32강이 기본값이 된 시대에 다시 쓰여야 한다.
정리 — 평가는 7월 19일 이후에
48개국 월드컵은 축구가 더 넓어진 사건인 동시에, 대회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더 무거워진 사건이다. 32강이라는 새 관문, 조 3위 진출의 셈법, 담합을 막기 위한 동시 킥오프, 그리고 우승까지의 여덟 걸음 — 이 모든 설계에는 ‘더 많이 담되 망가지지 않게’ 하려는 줄타기가 깔려 있다.
이 줄타기가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에 대한 답은, 7월 19일 결승의 휘슬이 울린 뒤에야 채점될 것이다. 그리고 그 채점표는 곧바로 다음 대회들의 설계도가 된다. 48개국 체제는 2026년 한 번으로 끝나는 실험이 아니라, 당분간 월드컵의 새로운 표준이기 때문이다.
자료 출처: FIFA, Al Jazeera, ESPN, NBC Sports, Britannica 등 공개 보도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