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독일은 조기총선을 치렀다. 연립정부 붕괴 이후 거의 반년 만에 유권자들이 다시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개표 결과는 비교적 신속하게 집계됐고, 새 정부 구성 협상도 빠르게 진행됐다. 독일은 선거 시스템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지난 6·3 대선을 전후해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사전투표소에서 용지가 동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일부 유권자는 투표를 포기해야 했다. 당연히 분노가 터져 나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수요 예측 오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전투표 참여율이 매 선거마다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해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선관위는 왜 준비하지 않았나.

이에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선거 무효를 주장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온라인에서는 재투표·재선거 요구가 확산됐다.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나 분노가 곧바로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가 거론된다. 선관위의 준비 부실, 책임 소재, 예산 집행 내역을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조사는 필요하다. 단,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재선거나 선거 무효 소송의 법적 문턱은 높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선거 결과 자체를 뒤집기 위해서는 단순한 절차 오류를 넘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증명돼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이다.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일본, 캐나다, 영국 등 주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대선 당일 발생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이것이 ‘관리 실패’인지 ‘시스템 붕괴’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거 제도 전반의 개혁이다. 사전투표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는 시스템, 비상시 긴급 증쇄 프로토콜, 선관위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 독일은 선거 뒤 불신이 아니라 신뢰를 쌓는다. 한국도 그 길로 가야 한다.

독일은 다시 투표했다. 한국은 다시 투표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 다시 투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