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만에 7000에서 8000으로… ‘광속 랠리’의 한복판
5월 들어 한국 증시는 매일이 사상 최고치다. 지난 11일 코스피는 전장 대비 324.24포인트(4.32%) 오른 7822.24로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팔천피’까지는 177.76포인트 남았다. 장 초반 급등세에 프로그램매수호가 일시효력정지(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올해만 벌써 8번째 사이드카다. 국내 증시 전체 시가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70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달 27일 6000조원을 넘은 지 불과 8거래일 만의 일이다.
오늘 12일도 같은 흐름이다. 지난 11일을 정리한 머니투데이는 “이날도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증시를 이끌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전거래일 대비 19만4000원(11.51%) 오른 188만원에 마감했고 장중엔 194만9000원까지 상승했다. 삼성전자는 1만7000원(6.33%) 상승한 28만5500원에 거래를 마쳤다”고 전했다. 사상 첫 ‘190만닉스’였다. 일부 외신 매체들은 이미 코스피 ‘1만피’를 화두로 띄우고 있다.
이쯤 되면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오를까?”가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오를까?”, 그리고 “이게 언제까지 갈까?”다.

’50만전자 300만닉스’에서 ‘190만 키움’까지… 목표가 인플레이션
가장 충격적인 건 증권가의 목표가 줄상향이다. 키움증권은 11일 SK하이닉스 2분기 영업이익 70조원으로 시장 컨센서스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범용 DRAM과 NAND의 가격 상승률이 각각 전 분기 대비 53%, 75% 상승하며 시장 기대치를 크게 넘어설 것으로 판단한다는 분석이다. 박유악 연구원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기존 130만원에서 190만원으로 상향 조정한다며 다만 목표주가와 현재 주가와의 괴리율 축소를 감안해 투자의견은 ‘매수’에서 ‘아웃퍼폼’으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주목할 부분은 마지막 문장이다. 목표주가를 60만원이나 올렸는데 투자의견은 오히려 한 단계 내렸다. 주가가 목표가만큼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는 뜻이다.
더 공격적인 전망도 즐비하다. SK증권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국내 증권가 사상 최초로 300만원으로 제시했고, 같은 날 미래에셋증권도 270만원으로 대폭 상향했다.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PER은 5.2배에 불과해 다른 AI 관련 주식 대비 극심한 저평가 상태라는 판단이다. 글로벌 IB도 가세했다. JP모건은 한국을 아시아 지역 최선호 시장으로 유지하며 코스피 목표치를 강세장 시나리오에서 1만 포인트로 예측했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의 올해 연말 목표치를 9750으로 상향조정하며 올해 코스피 밴드 하단은 6000, 상단은 1만2000으로 제시했다.

메모리는 더 이상 ‘경기순환주’가 아니다
이 모든 숫자의 밑바탕엔 한 가지 인식 전환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가 더는 호황과 불황을 2~3년 주기로 반복하는 ‘경기민감주’가 아니라,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재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변화의 증거는 두 가지다. 첫째, 장기공급계약(LTA)의 확산. 삼성전자는 4월 30일 1분기 실적 IR에서 일부 고객과 3~5년 주기의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으며, SK하이닉스도 4월 23일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메모리반도체 공급 부족 장기화로 고객으로부터 중장기 물량 확보에 대한 요청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3~5년 가격이 미리 정해지면 분기마다 출렁이던 이익이 평탄해진다.
둘째, 공급 부족이 2027~2028년까지 이어진다는 산업계 컨센서스. SK증권의 한동희 애널리스트는 2분기 메모리 가격 강세, 2027년까지 전 HBM 제품에 걸친 가격 인상, 장기 공급계약 확대, 2027년까지 이어질 공급 부족이 실적 상향과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을 동시에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JP모건도 메모리 수급 부족 현상은 내년에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메모리 시장의 장기 상승세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적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SK하이닉스는 2026년 1분기 매출 52조 5763억원, 영업이익 37조 6103억원(영업이익률 72%)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98%, 영업이익은 405% 급증했다. 영업이익률 72%는 명품 브랜드 수준이다.
수급의 역설 — 외국인은 팔고, 개인은 사는 이상한 강세장
그러나 이번 랠리의 가장 기묘한 지점은 수급 구조에 있다. 11일 개인과 기관은 각각 2조8689억원과 6247억원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3조5084억원 순매도해 이날까지 3거래일 연속 ‘팔자’를 나타냈다.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와중에 외국인은 짐을 싸고 있고, 개인이 외국인이 던지는 물량을 받아내며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건 과거와 정반대 패턴이다. 통상 외국인이 사야 코스피가 오르고, 개인이 따라 사면 고점이라는 게 정석이었다. 이번에는 외국인이 차익을 실현하는데도 개인이 “더 오른다”며 매수에 나서고 있다. 한쪽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거버넌스 개혁, AI 슈퍼사이클이라는 거시적 명분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나만 못 타면 안 된다”는 포모(FOMO)의 심리가 작용한다. 매수와 매도 잔량의 불균형을 나타내는 호가 잔량 분석에 따르면 8000포인트 직전 구간에 포진한 대기 매도 물량은 평소 대비 3배 이상 급증한 상태다. 8000은 ‘심리적 천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변동성을 증폭시킬 새로운 장치가 곧 등장한다. 이르면 5월 22일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가 국내 증시에 상장될 예정이다. 추가 자금이 유입될 수 있지만, 같은 구조가 하락기에는 반대로 변동성을 확대시킨다.

그러나 — 블룸버그가 지적한 한국 증시의 취약점
낙관론 일색은 아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반도체주 급등이 시장의 취약점을 가리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코스피의 올해 상승분(85%)이 대부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11일 코스피 시장 내 835개 종목 중 상승을 기록한 종목은 147개지만, 하락 종목은 738개로 집계됐다. 코스피 내 상승세가 일부 종목에만 쏠리고 있는 셈이다. 지수는 매일 신고가인데 88%의 종목은 빠지는 K자 양극화 장세다.
리스크는 그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 총파업 위기로 치닫고 있다. SK하이닉스급 성과급 기준을 사측이 제시하고 있지만 노조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이란 협상은 여전히 난항이고, 한국은행은 28일 금리 인상 신호를 낼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승훈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서머랠리 이후 8~9월부터 경기 및 반도체 투자 심리 피크아웃 우려가 부각될 수 있으며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차익실현 수요도 변수라고 진단했다.

전망 — 세 가지 시나리오와 한 가지 진실
종합하면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정리된다.
낙관(확률 50%): 5월 말 단일종목 ETF 상장이 추가 유동성을 공급하고, 7월 말 SK하이닉스 2분기 실적(70조원대 예상)이 이를 정당화한다. 코스피는 연말 9000~9700선까지, SK하이닉스는 200만~230만원, 삼성전자는 30만원대 중반에 도달한다.
중립(확률 35%): 6~7월 한 차례 가파른 조정이 온다. 외국인의 차익실현이 가속화되고 8000선 부근의 매물 벽을 뚫지 못한다. 그러나 메모리 업황 자체는 망가지지 않아 가을부터 다시 상승, 연말 8500선에 안착한다.
비관(확률 15%): 빅테크의 AI 투자가 예상보다 일찍 둔화되거나, 노조 파업이 실제로 터지거나, 미-이란 정세가 급변한다. 코스피는 7000선 아래로 밀린다.
세 시나리오 모두에 공통된 진실 하나는 있다. 이번 랠리의 본질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있다. 메모리가 AI라는 새 산업의 인프라가 됐다는 사실은 단기 주가 등락과 무관하게 유효하다. 다만, 산업의 방향과 주가의 속도는 별개다. 산업이 옳다고 매일 14%씩 오르는 게 정상은 아니다.
결국 지금 시장에 필요한 건 두 가지 시야다. 하나는 망원경 — AI 슈퍼사이클이 만들어내는 5년치 변화를 보는 눈. 다른 하나는 청진기 — 사이드카가 매일 발동되는 시장의 과열음을 듣는 귀. 이 둘을 동시에 갖춘 사람에게만 ‘1만피’는 환상이 아니라 풍경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