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언론사의 구조적 병폐와 해외 신뢰 언론의 길
1. “기사를 쓰는가, 보도자료를 옮기는가”
언젠가부터 한국 신문의 1면과 포털 메인은 비슷한 문장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같은 사건, 같은 단어, 심지어 같은 문단 구성. 출처를 가린다면 어느 매체의 기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학계는 이를 “받아쓰기 저널리즘”, “따옴표 저널리즘”이라 부른다. 누군가의 발언이나 보도자료를 큰따옴표 안에 넣어 그대로 옮기기만 하는, 검증도 맥락도 없는 보도 관행이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일부 매체의 게으름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기본 작동 방식이 되었다는 점이다. 한 연구는 한국 지상파와 종편 뉴스의 보도자료 의존도가 BBC, NBC, NHK 등 해외 방송사보다 현저히 높고, 심층 보도의 비중은 반대로 낮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정부 부처가 자료를 배포하면 수백 개 언론이 거의 동일한 기사를 송고하는 일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사실 확인을 위한 추가 취재, 이해관계자의 반론, 통계의 맥락 검증 같은 저널리즘의 기본 절차가 시간과 비용의 문제로 생략된다.
검증되지 않은 발언을 따옴표로 처리해 책임을 화자에게 떠넘기는 방식은 특히 정치 보도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정부와 여야의 일방적 주장이 검증 없이 헤드라인이 되고, 다음 날 상대 진영의 반박이 다시 헤드라인이 된다. 독자는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알지 못한 채 양쪽 발언만 끝없이 받아 보게 된다. 저널리즘이 아니라 중계방송이다.

2. 보증금 2천만 원, 월 광고 수주 500만 원 — 지방 주재기자의 진짜 직업
문제의 뿌리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은 지역 주재기자 채용 시장이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한 지방지의 시 단위 주재기자는 지사를 차리며 본사에 보증금 2천만 원을 냈고, 매달 수주해야 할 최저 광고 금액은 500만 원이었다. 또 다른 사건에서 광주 무등일보의 한 기자는 계약보증금 2천만 원과 지대(紙代) 명목 1억 8,500여만 원을 회사에 지급한 사실이 재판에서 확인됐다.
채용 공고의 표면은 ‘기자’지만, 실질은 ‘광고 영업사원 겸 명함 발급자’에 가깝다. 기본급은 최저시급 수준에 묶이고, 수입의 대부분은 본인이 따 온 광고의 수수료(통상 15% 안팎)로 충당하는 구조다. 광고가 들어오지 않으면 생계가 흔들리니, 기자는 출입처와 지역 사업자를 비판할 수 없다. 비판할 수 없는 기자가 쓰는 기사는 보도자료의 변형이거나, 광고주에 대한 우호적 기획기사이거나, 시청·도청 행사의 사진 캡션이 된다.
이 구조는 자연스럽게 ‘사이비 언론’의 토양이 된다. 국회입법조사처와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는 광고 강요, 금품 갈취, 간행물 강매, 부당이권 개입, 기자증 판매 같은 적발 사례가 유형별로 정리돼 있다. 악의적 기사를 먼저 내보낸 뒤 광고를 요구하는 이른바 ‘협박 저널리즘’은 어느새 일부 일탈이 아니라 산업의 한 분파로 자리 잡았다. 정부가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유사언론 행위’ 실태조사를 벌여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나섰을 정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이비 언론과 정상 언론을 가르는 선이 생각보다 흐릿하다는 사실이다. 기자에게 광고 영업을 강제하는 회사, 보증금 명목으로 입사 시 수천만 원을 받는 회사, 기본급을 최저임금에 묶어 두고 광고 수수료로 살아가게 하는 회사가 정상 언론으로 분류돼 정부 광고와 지자체 협찬을 받아가는 현실은 그 경계를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든다.
3. 사명감을 요구할 수 없는 임금 구조
저널리즘의 윤리는 흔히 개인의 직업의식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한 달에 200만 원 안팎의 수입으로, 그것도 직접 광고를 따와야만 채워지는 임금으로 살아가는 기자에게 권력 감시와 진실 추구를 요구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사명감은 도덕의 문제이기 이전에 노동 조건의 문제다.
한국 언론진흥재단이 정부 광고를 대행하고 받는 수수료(약 10%)로 연 1,000억 원이 넘는 수입을 올려 저널리즘 연구·취재 지원·언론인 교육에 쓴다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 자금이 정작 가장 열악한 지역·중소 매체의 기자 처우 개선으로 흘러가는 통로는 거의 없다. 7개 지역 기자협회가 정부 광고 대행 수수료율을 지역 언론에 한해 인하하거나 매출 연동으로 차등화해 달라고 공동 대응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산업 전체의 광고 의존도가 너무 높고, 그 광고 중 상당수가 정부·공공기관 발(發)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한국 언론의 독립성에 근원적 의문을 제기한다. 광고주가 곧 취재 대상인 구조에서 비판 보도는 사치다.
4. 해외 주요 언론은 어떻게 신뢰를 쌓았나
한국 언론의 위기를 진단할 때 자주 호명되는 해외 매체들이 있다. 이들이 처음부터 신뢰받는 언론이었던 것은 아니다. 신뢰는 특정한 소유 구조와 수익 모델, 그리고 명문화된 원칙을 오랜 시간 견지한 결과로 만들어졌다.
영국 가디언의 사례가 가장 극적이다. 가디언은 1936년 소유주였던 스콧 가문이 자신들의 지분을 ‘스콧 트러스트(Scott Trust)’라는 비영리 신탁에 넘기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됐다. 이 신탁의 유일한 목적은 가디언의 재정적·정치적 독립을 영구히 보장하는 것이다. 즉, 가디언에는 배당을 요구하는 주주도, 매각을 노리는 사주(社主)도 없다. 회사의 모든 이익은 다시 저널리즘에 재투자된다. 가디언이 디지털 시대에 페이월 대신 ‘독자 기여(reader contribution)’ 모델을 택해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소유 구조 위에서만 가능한 실험이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옥스 설즈버거 가문이 5세대에 걸쳐 의결권을 통제하는 ‘클래스 B 주식’ 구조를 통해 단기 수익 압력에서 편집권을 보호해 왔다. 2005년 첫 유료화 시도가 실패한 뒤에도 NYT는 광고 의존을 줄이고 디지털 구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장기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22년 말 기준 유료 구독자 약 955만 명 중 디지털 전용이 883만 명에 이르렀고, 매출 구조에서도 구독이 광고를 추월했다. 광고주가 아닌 독자가 비용을 지불하는 매체는 광고주가 아닌 독자에게 책임을 지게 된다는, 단순하지만 결정적인 원칙의 실현이었다.
영국 BBC는 수신료라는 또 다른 길을 보여 준다. BBC는 자사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시민의 신뢰(trust)’로 명문화하고, 이 신뢰를 정확성과 불편부당성(impartiality), 그리고 검증의 원칙으로 떠받친다. 여러 출처를 활용한 교차검증, 정보 확인 절차의 공개, 익명 취재원 사용에 대한 엄격한 내부 기준은 한국 언론이 ‘단독’을 위해 가장 먼저 생략하는 절차들이다. 물론 BBC도 수신료 협상 과정에서 정치적 압력에 노출되며, 최근 몇 년간 보도의 공정성을 둘러싼 내홍을 겪어 왔다. 그럼에도 BBC가 여전히 공영방송의 롤모델로 거론되는 이유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를 외부 압력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내부 원칙의 재정립으로 풀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비영리 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광고도 구독도 아닌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이 매체는 탐사보도에만 집중한다. 자체 보도뿐 아니라 자사가 발굴한 자료와 취재 결과를 다른 언론사와 무료로 공유해 사회적 파급력을 극대화하는 협업 모델로도 유명하다. 수익 압박이 사라지면 저널리즘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실험이며, 한국에서도 뉴스타파 등이 비슷한 모델을 시도해 왔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매체가 광고주·정부·사주의 단기 이해로부터 구조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뢰는 기자의 의지나 선언적 윤리강령이 아니라, 광고주가 편집국에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서 나온다.
5. 한국 언론에 필요한 질문
한국 언론의 위기를 흔히 ‘저널리즘의 위기’라고 표현하지만, 더 정확히는 ‘저널리즘이 작동할 수 있는 산업 조건의 부재’에 가깝다. 기자에게 광고 영업을 강제하지 않고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임금, 광고주가 곧 취재 대상이 아닌 매출 구조, 사주의 단기 이익으로부터 편집권을 분리하는 소유 구조, 받아쓰기를 부끄러워할 줄 아는 내부 규범,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별 기자의 사명감을 탓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해외 사례가 한국에 그대로 이식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디언의 신탁, NYT의 디지털 구독 전환, BBC의 수신료, 프로퍼블리카의 비영리 모델은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매체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누가 비용을 지불하는가.” 이 질문에 한국의 중소 언론사들은 지금 이렇게 답하고 있는 셈이다. “광고주를 위해 존재하고, 광고주가 비용을 지불한다. 기자가 그 광고를 직접 따 와야 한다.” 이 답이 바뀌지 않는 한, 보도자료를 옮기는 손가락도, 명함을 들고 광고주를 찾아다니는 발걸음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국 언론에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자성(自省) 칼럼이 아니다. 광고 강매와 기자에 대한 사실상의 영업 강제를 산업의 일부로 묵인해 온 제도와 관행,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정부 광고 배분 구조와 포털 트래픽 의존 모델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그 출발점은, 우리가 ‘기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기자라는 직업이 가능한 임금과 노동 조건을 먼저 돌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