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간만이 AI를 주도한다.” 올해 1월 국회 ‘독서국가’ 선포식 슬로건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AI가 일상을 지배하는 2026년, 문해력 저하는 국가적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책맹’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OECD PISA 2025의 디지털 리터러시 평가가 촉발한 논쟁은 더 뜨겁다. AI가 효율성을 약속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사유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까? AI 시대 문해력의 다층적 위기를 해부하고, 생존 전략을 모색해본다.

1. 붕괴하는 문해력
2026년 2월, YTN이 보도한 ‘AI에 빼앗긴 문해력’ 영상이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AI의 답변을 검증 대상이 아닌 ‘정답’으로 받아들이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불과 한 달 전인 1월 23일에는 국회에서 ‘독서국가’ 선포식이 열렸고, 범정부 차원의 독서국가 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읽는 인간만이 AI를 주도한다”는 이날의 슬로건은, 생성형 AI가 2년도 안 되어 전 세계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이 시점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아날로그적인 행위가 국가 생존 전략의 핵심으로 격상되었음을 선언한 것이다. 이 두 장면 사이에, AI 시대 문해력이라는 거대한 화두의 본질이 담겨 있다.
생성형 AI는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문장이 사실인지, 맥락에 맞는지, 의도된 편향이 포함되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문해력이 약한 상태에서 AI를 사용하면, 인간은 AI를 활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결과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객체로 전락한다.
가짜뉴스, 딥페이크, 자동 생성 보고서, 여론 조작 콘텐츠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이 환경에서 문해력은 단순 독해 능력이 아니라, ‘판별력’과 ‘구조화 능력’이다.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다. 문해력 저하는 가짜뉴스 확산, 학습 격차, AI 활용 실패로 이어져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국회 김영호 위원장은 “AI가 대체 못 하는 비판적 사고는 깊이 읽기에서 나온다”며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2. AI가 재정의한 문해력
[위기] 텍스트 과잉 시대, 우리는 왜 ‘실질적 문맹’이 되었나
과거의 문맹이 글자를 읽지 못하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문맹은 ‘글을 읽어도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 성인 27.5%, 중학교 수준 어휘 미달: EBS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 4명 중 1명 이상은 중학교 수준의 어휘력조차 갖추지 못했다. 이들은 일상생활의 필수 정보인 계약서나 공공문서를 이해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청소년 디지털 문해력의 몰락: OECD PISA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역량은 25.6%에 불과해, 영국(68%)이나 미국(65%)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OECD 평균(47%)에 한참 못 미치는 최하위권 수준을 기록했다.
-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 문해력 저하는 가짜뉴스의 확산에 취약한 사회를 만들고, 학습 격차를 심화시키며, 결국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AI 활용 능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다.

2. AI 시대의 문해력,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AI 시대의 문해력은 전통적 의미의 ‘글을 읽고 쓰는 능력’에 머물지 않는다. 문해력의 개념 자체가 빠르게 재정의되고 있다. 학계와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AI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프롬프트 리터러시(Prompt Literacy)’라는 새로운 층위가 부상하고 있다.
프롬프트 리터러시란 생성형 AI에게 효과적인 지시문을 작성하고, AI가 산출한 결과물의 정확성과 편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이를 수정·보완하여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는 종합적 역량을 뜻한다. 2025년 12월 교육전문매체 교비(Kyobit)는 “AI 시대의 문해력은 프롬프트 리터러시로 재정의되고 있으며, 이것이 대입의 핵심 역량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단순히 AI에게 명령을 내리는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아는 것, 즉 ‘질문하는 힘’이 새로운 문해력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역설이 드러난다. AI에게 좋은 질문을 하려면 먼저 해당 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 논리적 사고력, 맥락 파악 능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전통적 문해력이 튼튼해야 새로운 문해력도 작동한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정보의 활용 능력’이라면, 독서에서 길러지는 전통적 문해력은 그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는 ‘철학적 기반’이다. 기초 체력 없이 첨단 장비만 갖추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일과 다르지 않다.
3. 위기의 뿌리 : 기술 중독과 교육 공백
원인은 다층적이다. 스마트폰·AI 중독으로 독서 시간이 급감했다. 2026년 조사에서 직장인 독서량은 주 1시간 미만, AI 프롬프트 입력은 평균 5분에 그친다. 교육 현장에서도 AI가 ‘대체 도구’로 전락, 창의적 사고 훈련이 소홀하다. “AI 없이는 수업 따라가기 힘들다”는 학생 목소리가 이를 반영한다.

사회적 요인도 크다. ‘독서국가’ 선포에도 불구하고, 예산 편성은 미미. 사서교사 역할 축소로 학교 도서관이 쇠퇴, 디지털 격차(고령층·소외계층)가 문해력 불평등을 키운다. 글로벌 트렌드(OECD 보고서)에서 디지털 리터러시는 ‘사회적 과제’로 부상, 개인 의지만으론 부족하다.
국가가 나서야 하는 이유
이런 배경에서 2026년 1월의 독서국가 선포는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구조적 대응의 시작점으로 읽힌다.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은 이날 5~9세를 ‘독서 골든타임’으로 명명하고, 유치원의 독서유치원 전환, 중1 자유학기제의 독서학기제 전환, 학생 독서 이력의 기록화와 고교학점제 연동 등 생애주기별 독서교육 로드맵을 발표했다. 교육부 역시 ‘디지털 대응 독서교육 활성화 지원 사업’을 추진하며, EBS와 연계한 진로연계 독서멘토링, 유아기 조기독서교육 지원 등의 구상을 밝혔다.
민간 영역에서도 이 흐름에 기술적 해법을 제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가짜뉴스 판별 훈련, 공공문서 이해력, 실생활 과제 러닝 등 디지털 리터러시 영역까지 포괄하는 이러한 시도는, 전통적 독서 교육과 AI 기술이 대립항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에듀테크 시장이 2026년 약 11조 원 규모로 성장하고, 특히 성인 대상 자기계발 및 문해력 교육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은 이 분야의 사업적 가능성도 뒷받침한다.

읽는 인간만이 질문할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문해력 논의는 하나의 역설로 수렴한다. 기계가 모든 텍스트를 읽고 요약하고 생성할 수 있게 된 바로 그 순간, 인간이 직접 읽고 사유하는 행위의 가치가 가장 높아졌다는 것이다. AI가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최적의 답을 몇 초 만에 제시하는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그 답의 정당성을 묻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질문하는 힘’은 긴 텍스트를 인내심 있게 읽으며 논리를 재구성하고, 행간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며, 저자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과정에서만 길러진다.

독서국가 추진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은 조희연 전 서울교육감은 이 운동의 본질을 “독서공동체의 회복”이라 명명했다. 박준 시인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언어가 앙상해지면 분노도 기쁨도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했다. AI가 개인화된 정보 코쿤 속에 각자를 가두는 시대에, 책을 매개로 공동의 언어와 사유의 토대를 재건하는 일은 교육 정책을 넘어 사회 통합의 문제이기도 하다.
PIAAC 결과에서 확인된 한국 성인의 문해력 하락, PISA가 보여주는 청소년의 디지털 문해력 취약성, 인지적 오프로딩 연구가 경고하는 AI 의존의 인지적 대가, 그리고 가짜뉴스와 AI 생성 콘텐츠가 범람하는 정보 환경.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메시지로 집약된다. 읽는 힘은 이제 개인의 교양이 아니라 국가의 기초 체력이며, AI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인간적인 경쟁력이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곧 미래를 여는 소리라는 말이, 지금처럼 절실하게 들리는 시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