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법부의 반란’: 헌법이 트럼프의 ‘경제 비상사태’를 멈추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권력 분립’의 재확인이다. 대법원은 6대 3이라는 압도적 차이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남용해 의회의 고유 권한인 ‘과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 판결의 논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무역 규제권’은 세금을 신설할 권한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는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라는 마법의 단어 하나로 헌법을 우회할 수 없다는 강력한 경고다.
- 보수 대법관들의 이탈: 트럼프가 직접 임명한 닐 고서치와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위헌 의견에 가담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미국의 사법 시스템이 정치적 임명 논리를 넘어 ‘헌법적 원칙’을 우선시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 1,600억 달러의 ‘환급 전쟁’ : 미국 재무부의 재앙인가?
법원이 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규정하면서, 이제 공은*‘이미 낸 돈을 어떻게 돌려받을 것인가’로 넘어갔다. 현재까지 징수된 관세액은 약 1,330억 달러에서 최대 1,600억 달러(한화 약 210조 원)로 추산된다.
- 글로벌 기업들의 소송 행렬: 이미 소송을 준비 중인 코스트코, 월마트 등 미국의 대형 유통사뿐만 아니라 삼성, 현대차, 그리고 수많은 유럽과 일본 기업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유례없는 글로벌 소송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 재정적·행정적 마비: 만약 미국 정부가 이 금액을 모두 환급해야 한다면, 이는 미 연방 재정에 막대한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관세청(CBP)의 행정력을 마비시킬 수준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환급을 최대한 지연시키거나, 새로운 행정 명령으로 이를 저지하려 할 것이기에 ‘수십 년에 걸친 법정 공방’이 될 가능성이 크다.

3. 트럼프의 ‘플랜 B’ : 무역법 122조와 150일의 시한폭탄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물러서는 대신 ‘무역법 122조’라는 새로운 무기를 꺼내들었다. 이는 국제수지 적자가 심각할 경우 대통령이 150일간 긴급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한 조항이다.
- 법적 우회로: IEEPA가 반영구적인 관세라면, 무역법 122조는 ‘시한부’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150일을 전 세계를 상대로 한*‘협상의 칼날’로 사용할 수 있다.
- 예고된 혼란: 150일 뒤에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관세는 사라지지만, 그사이 트럼프는 상대국들에 “관세를 면제받고 싶으면 더 많은 미국 투자를 가져오라”고 압박할 것이다. 즉, 시장은 ‘법적 안정성’이 아닌 ‘대통령의 입’에 따라 널뛰는 극도의 변동성 구간에 진입했다.
4. 한국 경제의 딜레마 : ‘약속한 투자’는 어떻게 되나?

한국은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수혜국이 될 수도, 혹은 가장 큰 피해국이 될 수도 있는 기로에 서 있다.
- 반사 이익의 가능성: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의 법적 근거가 무너지면서, 반도체와 가전 등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의 가격 경쟁력이 일시적으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투자-관세’ 빅딜의 파기 위기: 문제는 작년 말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약속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이다. 관세 자체가 위법 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굳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 하느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수 있다.
- 정부의 과제: 우리 정부는 “법적 근거가 사라진 관세에 대해 기존 투자 약속을 재협상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과, “약속 파기 시 보복하겠다”는 트럼프의 압박 사이에서 고난도의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결론 : 관세의 시대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의 시대로
미 대법원의 판결은 트럼프식 경제 민족주의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사법부를 “국가 파괴 세력”으로 규정하며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고, 더 변칙적이고 강력한 경제 보복 수단을 찾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과 국가들에 남겨진 과제는 ‘법보다 빠른 정치’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제 경제 분석은 차트가 아닌 워싱턴의 정치 지형도를 읽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