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6시. ‘관악 별빛 스포츠센터’는 평소와 다른 정적이 감돌았다. 한서준이 들어섰을 때, 마스터즈 레인 주변에는 이미 다섯 명의 남녀가 몸을 풀고 있었다. 모두 ‘황새치 수영 동호회’라는 로고가 박힌 검은색 수모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유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봤다. 낡은 수영복, 브랜드도 없는 수경. 경계심과 약간의 무시가 섞인 시선이었다.

“다짜고짜 도장깨기라… 요즘 애들 겁이 없네.”
폭탄머리를 한 남자가 헛웃음을 쳤다. 그는 50미터 단거리 전문인 ‘인간 모터보트’ 박성준이었다.
“성준아, 입 닥쳐.” 황인철이 나섰다. “오늘 우리 동호회 명예가 걸렸다. 한서준 군, 준비됐나?”
서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대결은 박성준과의 자유형 50미터였다. 총성과 함께 박성준이 말 그대로 물 위를 튀어 나갔다. 엄청난 파워와 빠른 팔 회전. 25미터 지점을 돌 때까지 유진은 반 토막 가까이 뒤처져 있었다. 동호회 회원들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역시 파워가 다르지.’
하지만 서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고시원 방에서 밤새도록 태블릿을 들여다봤다. 이강호는 스타트 후 잠영 구간에서 돌핀킥을 최소화했다. 대신, 물의 저항이 가장 적은 심도를 찾아 바늘처럼 파고드는 ‘침투 잠영(浸透潛泳)’을 구사했다. 힘의 소모를 줄이고, 수면파의 저항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서준은 이강호의 데이터를 몸으로 재현했다. 턴을 한 직후, 그는 킥을 멈추고 유선형 자세로 물속을 미끄러졌다. 폭발적인 힘으로 물거품을 일으키는 박성준과 달리, 유진의 주변엔 기포조차 거의 일지 않았다. 에너지를 비축한 유진은 마지막 15미터를 남기고 스퍼트를 시작했다. 지친 박성준의 스트로크가 짧아지는 순간, 유진의 팔이 물을 끝까지 밀어내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타-앗!
결과는 손가락 한 마디 차이. 서준의 승리였다. 박성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광판 대신 서준을 쳐다봤다. 저런 영법은 본 적이 없었다.
두 번째 상대는 전직 청소년 대표 출신인 박서연이었다. 주종목은 접영 100미터. 그녀의 접영은 힘과 아름다움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 한 마리의 나비가 물 위를 날아가는 듯했다.
“힘만 좋은 줄 알았는데, 기술도 좀 볼까?”
박서연은 우아하게 물살을 갈랐다. 서준의 접영은 그녀에 비하면 투박하기 짝이 없었다. 어깨를 이용해 억지로 물을 찍어 누르는 듯한 자세. 하지만 황인철은 서준의 움직임에서 기묘한 점을 발견했다.
‘리커버리 동작이… 이상할 정도로 낮아.’
보통 접영은 팔을 물 밖으로 최대한 높이 들어 저항을 줄인다. 하지만 이강호의 데이터는 달랐다. ‘어깨의 유연성이 부족한 동양인에게 높은 리커버리는 오히려 체력 소모를 가중시킨다. 수면에 최대한 가깝게, 팔을 던지듯 넘겨라.’
서준은 그 분석을 따르고 있었다. 겉보기엔 힘겨워 보였지만, 체력 소모는 박서연보다 훨씬 적었다. 75미터 지점. 박서연의 우아한 날갯짓이 눈에 띄게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서준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힘을 폭발시켰다. 결과는 또다시 서준의 근소한 승리.
동호회 회원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저 소년은 괴물이었다. 힘과 기술을 가진 상대를, 전혀 다른 방식의 ‘효율’로 압도해버렸다.
마지막으로 황인철이 나섰다.
“개인혼영 200미터. 이걸 이기면, 널 인정해주지.”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모든 영법을 겨루는 진정한 실력의 잣대. 이것은 단순한 대결이 아니었다. ‘별빛 리그’의 왕이, 새로운 도전자에게 왕좌를 걸고 싸우는 결투였다.
레이스는 상상 이상으로 치열했다. 접영과 배영은 황인철이 근소하게 앞섰다. 그러나 서준에겐 ‘이강호’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약점이었던 평영. 태블릿 속 이강호는 ‘웨이브를 최소화하고, 킥의 추진력에만 집중하는 실전 평영’을 구사했다. 서준은 그 움직임을 흉내 내며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마지막 자유형 50미터. 두 사람의 거리는 거의 같았다. 체력은 바닥났고, 정신력 싸움이었다. 서준의 눈앞에 고시원 천장과 공사장의 먼지가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물을… 끝까지 밀어라!’
최 관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서준은 마지막 남은 산소까지 쥐어짰다. 그의 손끝이 벽에 닿는 순간, 옆 레인의 물살도 동시에 멈췄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수영장 끝의 낡은 디지털 타이머를 바라봤다.
3 LANE: 2:08.15 4 LANE: 2:08.31
0.16초 차이. 한서준의 승리였다.
수영장에는 기계의 희미한 소음과 두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황인철은 한참 동안 숨을 고르더니, 물 밖으로 나와 서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졌다. 깨끗하게.”
그 순간, 다른 동호회 회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시기와 무시는 사라지고, 강자에 대한 순수한 경의만 남아 있었다.
그날 저녁, 황인철은 서준을 국밥집으로 데려갔다. 그는 뚝배기 앞에서 주저하는 서준에게 빳빳한 5만 원짜리 몇 장을 쥐여주었다.
“이걸로 수영복이라도 하나 사 입어라. 그리고 이건 약속했던 다음 ‘도장’이다.”
황인철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선배, 접니다. 황인철.”
수화기 너머로 잠에 잔뜩 잠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 시간에 웬일이냐. 또 동네 수영장에서 애들 이기고 술 사달라고?”
제4장: 얼음 심장의 조련사
황인철이 건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대한민국 수영계에서 ‘전설’이자 ‘이단아’로 통하는 이름, 주진우였다. 그는 10년 전, 심판 판정에 불복하고 협회 고위층의 멱살을 잡았던 이강호의 아버지이자 유일한 코치였다. 그 사건 이후 영구제명 당해 수영계에서 완전히 사라진 인물. 사람들은 그가 술에 절어 살거나, 낚시꾼으로 늙어가고 있을 거라 추측할 뿐이었다.
“선배, 10년 전에… 이강호 기억하십니까?”
황인철의 말에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순간 멎었다. 시끄럽던 주변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낮은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잠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날카롭게 갈아낸 칼날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어디냐.”
약속 장소는 다음 날 새벽, 한강 둔치의 한적한 주차장이었다. 서준이 도착했을 때, 낡은 트럭 옆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나이,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노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 그러나 서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눈이었다. 모든 감정이 거세된 듯 차갑고, 상대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얼음 같은 눈빛. 그가 바로 주진우였다.
주진우는 서준을 위아래로 훑어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황인철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이 녀석이 강호의 영법을 쓴다고?”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닙니다, 선배. 제가 직접 붙어봤는데, 단순히 빠른 게 아니라… 뭐랄까, 물을 이해하고 있어요.”
주진우는 다시 서준을 바라봤다. 그는 서준의 몸을 마치 부품 분석하듯 뜯어보고 있었다.
“어깨 관절은 뻣뻣하고, 허리 유연성도 별로군. 하체에 비해 상체 근력이 부족해.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엉망이야. 이런 몸으로 강호의 수영을 한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차가운 평가에 서준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주진우는 트럭 짐칸에서 낡은 캠코더와 방수팩을 꺼내 들었다.
“따라와.”
그가 향한 곳은 한강에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불꺼진 수영장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안에서도 느껴질 만큼 수온은 얼음장 같다.
“50미터 레인이다. 자유형으로 전력 질주해 봐. 네가 가진 모든 걸 보여줘.”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서준은 옷을 벗고 망설임 없이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수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벽을 차고 나아갔다. 주진우는 그런 유진의 모습을 캠코더로 묵묵히 담았다.
서준이 겨우 50미터를 완주하고 물 밖으로 나왔을 때,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주진우는 그런 서준에게 수건 하나 던져주지 않았다. 대신, 캠코더의 작은 화면을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네 수영을 봐라.”
화면 속에서 서준은 필사적으로 물을 젓고 있었다. 하지만 주진우의 손가락은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 입수할 때 손끝이 아니라 손바닥이 먼저 물에 닿는다. 저항이 생기지. 그리고 스트로크 할 때 팔꿈치가 어깨보다 아래로 떨어진다. 힘이 분산된다는 뜻이야. 결정적으로, 네 호흡은 완전히 엉망이다. 물속에서 음-파, 참고 뱉는 기본조차 안 돼 있어. 그냥 숨 막히니까 고개만 돌리는 수준이야.”
주진우는 캠코더를 끄며 마지막 결론을 내렸다.
“넌 재능이 없어. 그냥 힘만 좋은 막노동꾼의 몸부림일 뿐이다. 돌아가라.”
차가운 사형선고였다. 황인철조차 당황해서 주진우를 말릴 정도였다. 하지만 서준은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가르쳐… 주십시오.” “뭘?” “제가 뭘 고쳐야 하는지, 전부 말씀해주셨습니다. 고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주진우는 서준의 눈을 쳐다봤다. 분노도, 억울함도 아닌, 오직 순수한 갈망이 담긴 눈빛. 10년 전, 모든 것을 잃고 좌절했던 아들의 눈빛과는 다른 종류의 불꽃이었다.
주진우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트럭으로 돌아가더니, 낡은 공구함에서 스노클(Snorkel) 하나와 고무 밴드를 꺼내 유진에게 던졌다.
“내일 새벽 5시, 여기로 다시 와. 단, 조건이 있다. 앞으로 3개월간,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머리를 들고 숨을 쉬지 마라. 오직 스노클로만 호흡한다.”
이것이 주진우의 첫 번째 훈련이었다. ‘센터 마운트 스노클’ 훈련. 그리고 그것은 지옥의 시작이었다.
[수영 용어 해설 & 실전 Tip]
1. 센터 마운트 스노클 (Center Mount Snorkel)
- 설명: 일반적인 스노클과 달리, 얼굴 중앙 이마 부분에 관이 오도록 설계된 훈련용 스노클이다. 수경 밴드에 고정하여 사용.
- 훈련 효과:
- 호흡의 자유: 고개를 돌려 숨을 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오직 물속 동작과 자세에만 완벽하게 집중할 수 있다. 스트로크의 좌우 밸런스를 맞추고, 완벽한 롤링(rolling, 몸통을 좌우로 돌리는 동작)을 익히는 데 최고의 훈련 도구.
- 코어 근력 강화: 스노클로만 숨을 쉬면 평소보다 호흡이 어려워져 자연스럽게 폐활량이 늘고, 안정적인 호흡을 위해 복부와 등 근육(코어)을 긴장시킨다.
- 실전 Tip: 처음 사용하면 물이 들어와 당황하기 쉽다. 물이 들어왔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평소보다 강하게 ‘푸!’하고 숨을 내뱉으면 관 속의 물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처음에는 짧은 거리부터 천천히 적응하는 것이 중요.
2. 드롭 엘보 (Dropped Elbow) / 하이 엘보 (High Elbow)
- 설명: 주진우가 지적한 ‘팔꿈치가 어깨보다 아래로 떨어지는’ 자세가 바로 ‘드롭 엘보’다. 자유형에서 가장 흔하게 나오는 나쁜 자세이며, 추진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원인. 반대로, 물을 잡을 때(캐치 동작) 팔꿈치를 어깨보다 높게 유지하여 마치 통나무를 끌어안듯 물을 잡는 자세가 ‘하이 엘보 캐치’.
- 중요성: 드롭 엘보 자세에서는 팔로 물을 ‘누르게’ 되어 힘이 아래로 분산되지만 하이 엘보 자세에서는 팔꿈치를 축으로 팔뚝 전체(전완근)를 사용해 물을 ‘뒤로 밀어낼’ 수 있어, 쓴 힘을 온전히 추진력으로 바꿀 수 있다.
- 실전 Tip: 수영장 벽에 한 손을 짚고 서서, 물속에서 하이 엘보 자세를 만들어 보는 연습. 팔꿈치를 수면 가까이 높게 유지한 채, 손끝부터 팔뚝까지 일직선이 되어 물을 잡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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