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차가운 물속에 있었다.
첫날, 서준은 물을 마시는 것보다 숨을 쉬는 게 더 힘들었다. 얼굴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스노클은 익숙한 호흡의 리듬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물이 함께 딸려 들어와 사레가 들리기 일쑤였다. 고개를 돌려 숨 쉬려는 본능이 튀어나올 때마다, 물 밖에서 주진우의 얼음 같은 목소리가 날아와 박혔다.

“머리 들지 마! 숨은 저 관이 쉬게 해주는 거야! 네 머리는 척추에 박힌 쇠꼬챙이라고 생각해. 절대 흔들리지 마!”
주진우의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호흡을 위해 머리를 돌리는 미세한 움직임이 몸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물의 저항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스노클은 그 원인을 원천 봉쇄하는 족쇄이자, 교정기였다.
일주일이 지나자 서준은 서서히 적응해갔다.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필사적인 동작이 사라지자, 비로소 느껴졌다. 물속에서 비틀어지는 내 몸의 불균형이. 오른팔로 물을 잡을 때 허리가 미세하게 더 가라앉는 느낌, 왼팔이 입수할 때 손바닥으로 물을 때리는 감각까지. 호흡이라는 가장 큰 과제에서 해방되자, 그의 모든 신경이 물과 몸의 교감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걸 차라.”
어느 날 새벽, 주진우는 고무 밴드를 던져주었다. 발목을 단단히 묶는 용도였다.
“뭐 하시는 겁니까?” “시키는 대로 해.”
서준이 발목에 밴드를 끼고 물에 들어가자마자 몸이 맥없이 가라앉았다. 발차기를 전혀 할 수 없으니 하반신이 돌덩이처럼 아래로 처졌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팔을 휘저을수록 몸은 더 가라앉을 뿐이었다.
“네 다리가 가라앉지? 넌 지금까지 그놈의 발차기로 네 형편없는 팔 동작을 땜질해왔던 거야. 다리가 가라앉을 것 같으니, 무의식적으로 킥을 더 차서 띄우는 거지. 그게 네 추진력의 절반을 깎아 먹는 버릇이다. 오늘부터 그 목발은 압수다.”
주진우는 풀사이드에 쪼그려 앉아 유진의 발버둥을 지켜봤다.
“가라앉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겠나?” “…팔로, 몸을 띄워야 합니다.” “어떻게?” “물을… 더 많이, 제대로 잡아야 합니다.”
바로 그거였다. 킥이라는 목발이 사라지자, 서준은 오직 상체만으로 몸 전체를 끌고 가야 했다. 가라앉는 하체를 띄우기 위해, 그는 본능적으로 팔을 더 멀리 뻗고, 더 높은 위치에서 물을 잡으려 애썼다. 주진우가 지적했던 ‘드롭 엘보’, 즉 팔꿈치가 떨어지는 자세로는 하반신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팔꿈치! 팔꿈치를 어깨보다 높게 유지해! 네 팔뚝 전체로 물을 끌어안고, 그걸 네 명치 끝까지 가져온다고 생각해! 네 손바닥이 아니라, 팔뚝이 노(paddle)다!”
물속에서 서준은 사투를 벌였다. 팔꿈치를 높게 유지하며 물을 잡는 ‘하이 엘보 캐치’ 동작.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어깨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서준의 몸은 변하기 시작했다. 등에는 잔 근육들이 선명하게 갈라졌고, 특히 팔뚝과 어깨 주변이 눈에 띄게 두꺼워졌다.
어느 날, 훈련을 마친 서준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주진우가 낡은 보온병을 툭 던져주었다. 따뜻한 생강차였다. 서준이 놀라 쳐다보자, 주진우는 무심하게 말했다.
“강호 녀석도 처음엔 그걸 제일 힘들어했지. 어깨가 빠질 것 같다고 매일 밤 울던 놈이야.”
아들의 이름을 꺼낸 것은 처음이었다. 그 무심한 말투 속에, 10년의 세월에도 아물지 않은 상처와 그리움이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서준은 말없이 생강차를 마셨다. 차가운 몸속으로 뜨거운 온기가 퍼져나갔다.
두 달째 되던 날. 주진우는 스노클과 밴드를 치우라고 했다.
“오늘은 맨몸으로 100미터, 시간만 잰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지금까지 했던 것만 생각해.”
서준은 오랜만에 맨몸으로 물에 들어갔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발목의 족쇄가 풀리자 하반신이 구름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숨을 쉬는 동작이 어색할 정도였다.
주진우의 신호에 맞춰 벽을 박차고 나아갔다.
그 순간, 서준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몸이 물 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이전에 수십 번씩 물을 저어야 했던 거리를, 이제는 서너 번의 스트로크만으로 활공하고 있었다. 하이 엘보로 잡아당기는 팔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강력한 추진력을 만들어냈고, 안정된 머리와 몸통의 롤링은 물의 저항을 거의 없애주었다. 마치 잘 닦인 얼음판 위를 질주하는 스케이트 선수 같았다.
마지막 터치패드를 찍고 숨을 몰아쉬는 서준에게, 주진우가 초시계를 보여주었다.
54초 11.
두 달 전, 서준의 개인 최고 기록보다 3초나 빠른 기록이었다. 동네 수영장에서는 상상도 못 할, 전국대회 결승권에나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수준의 기록.
서준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여전히 굳은살이 박인 투박한 손이었지만, 이제는 물을 잡고, 자신의 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노’가 되어 있었다.
“이제 겨우 물에 뜨는 법을 배운 거다.”
주진우는 초시계를 리셋하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얼음 같던 눈빛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보였다.
“다음 주말, 김포시 체육회장배 수영 대회가 있다. 고등부 자유형 100미터. 포세이돈 2군 놈들도 몇 명 나온다는군. 네가 배운 게 진짜인지, 아니면 그냥 우리 둘만의 착각인지… 거기서 증명해 봐라.”
제6장: 교과서 밖의 스트로크
김포시민체육센터의 공기는 락스 냄새와 묘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관중석은 한산했지만, 풀사이드에는 최신형 탄소 섬유 수경과 몸에 착 달라붙는 수십만 원짜리 수영복을 입은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과 수모에는 예외 없이 삼지창을 형상화한 ‘프로젝트 포세이돈’의 로고가 선명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속한 귀족들이었고, 그 외의 선수들은 감히 말도 섞지 못하는 평민에 가까웠다.
서준의 낡은 수영복은 그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야, 저거 봐. 요즘도 저런 사각 입는 애가 있냐?” “어디 동네 헬스장에서 왔나 보지. 참가에 의의를 두는 애들 있잖아.”
포세이돈 2군 소속인 김태석이 동료들과 킬킬거리며 서준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는 이번 대회 고등부 100미터의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완벽한 신체 조건, 시스템이 만들어낸 교과서적인 영법. 그는 포세이돈의 모범생이었다.
서준은 그들의 조롱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관중석 2층 가장 구석진 자리를 향해 있었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주진우가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구제명 당한 그는 코치석에 앉을 수 없었다. 눈빛만으로, 두 사람만의 대화가 오고 갔다.
‘놈들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마라.’ ‘네.’ ‘네 옆 레인은 텅 비어있는 거다. 오직 네 몸 아래에 흐르는 물길만 느껴. 그놈들은 물과 싸우지만, 너는 물을 타고 미끄러지는 거다.’
“On your marks.”
출발 신호음이 울리고, 8명의 선수가 스타팅 블록 위에서 몸을 숙였다.
삐-!
총성과 함께 김태석이 로켓처럼 튀어 나갔다. 포세이돈에서 수천 번 반복 훈련한 완벽한 스타트. 물보라를 거의 일으키지 않으며 15미터 잠영 구간을 순식간에 통과했다. 반면 서준의 스타트는 투박했다. 0.2초 정도 늦었다.
초반 25미터, 승부는 이미 결정된 것처럼 보였다. 김태석은 힘차고 빠른 템포의 스트로크로 선두를 질주했다. 물을 격렬하게 때리며 나아가는 그의 영법은 누가 봐도 강하고 빨랐다. 서준은 반 신장 정도 뒤처진 채 묵묵히 그를 쫓았다.
“거봐, 상대가 안 되지.” 김태석의 코치가 만족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관중석의 주진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서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좇고 있었다. ‘아직이야. 힘 빼지 마.’
승부가 갈리기 시작한 것은 50미터 턴 지점에서였다.
김태석은 벽을 발로 ‘차는’ 힘을 극대화하는 포세이돈의 정석 ‘플립 턴(Flip Turn)’을 구사했다. 폭발적인 힘으로 벽을 박차고 나와 다시 속도를 올렸다. 관객석에서 작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서준의 몸이 물속에서 공처럼 말렸다.
“저건…?”
주진우가 가르친 턴은 달랐다. 그는 서준에게 이렇게 설명했었다.
“플립 턴의 핵심은 발로 벽을 ‘차는’ 게 아니야. 몸이 회전하는 원심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벽에 발을 ‘갖다 대는’ 거다. 그리고 몸을 포탄처럼 만들어 물속으로 쏘아 보내는 과정이지. 힘으로 벽을 차는 순간, 애써 만든 유선형 자세가 무너지고 저항이 생긴다. 턴은 휴식이고, 다음 스트로크를 위한 준비 동작이야.”
서준의 턴은 김태석처럼 폭발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물 흐르듯 부드럽고 간결했다. 힘의 손실 없이, 회전하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진 잠영. 김태석이 강력한 돌핀킥으로 물을 차낼 때, 서준은 ‘하이 엘보 캐치’로 다져진 상체와 코어의 힘으로 물속을 활공했다.
15미터 라인을 지나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을 때, 두 사람의 거리는 거의 사라져 있었다.
“뭐… 뭐야?”
김태석의 코치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김태석 역시 옆 레인의 유진을 보고 순간 당황했다. 그의 완벽한 레이스에 불순물이 끼어든 것이다. 그는 페이스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 팔을 더 격렬하게 저었다.
하지만 그것이 패착이었다.
마지막 25미터. 초반 오버페이스와 당황으로 호흡이 흐트러진 김태석의 스트로크가 눈에 띄게 짧아지고,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물을 끝까지 밀어주지 못하고 급하게 팔을 빼내고 있었다.
반면, 전반에 힘을 비축한 서준은 스퍼트를 시작했다. 그는 스노클 훈련으로 완성된, 머리가 거의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한 번의 스트로크로 나아가는 거리, 즉 ‘스트로크 당 거리(Distance Per Stroke, DPS)’가 김태석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수영은 물을 많이 젓는 놈이 이기는 게 아니야. 한 번을 저어도, 물을 제대로 잡고 끝까지 밀어주는 놈이 이기는 거다!”
주진우의 가르침이 서준의 뇌리를 스쳤다.
마지막 5미터. 두 선수가 거의 동시에 팔을 뻗었다. 하지만 김태석의 팔이 힘겹게 수면을 때릴 때, 서준의 팔은 물속 깊은 곳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짜내 물을 밀어내고 있었다.
터치.
전광판의 숫자가 깜빡였다.
4 LANE (김태석): 53.88 5 LANE (한서준): 53.86
0.02초. 손톱 하나의 차이.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시간의 차이가 아니었다. 시스템의 교과서가, 이름 없는 이단아의 해답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수영장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 김태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전광판과 서준을 번갈아 쳐다봤다. 포세이돈의 코치는 굳은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저 스트로크… 10년 전의 이강호랑 똑같아. 대체 누구지, 저 녀석?”
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관중석을 올려다봤다. 주진우가 있던 자리는 비어있었다. 그는 이미 조용히 사라진 후였다. 하지만 서준은 알 수 있었다. 텅 빈 의자에 스승의 뜨거운 인정이 남아있음을.
그의 진짜 ‘도장깨기’는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겼을 뿐이었다.
제7장: 유령의 귀환
김포 대회가 끝나고 며칠 뒤. 서울의 심장부, 테헤란로의 한 통유리 빌딩 최상층. 그곳에는 ‘프로젝트 포세이돈’의 중앙 데이터 분석실이 있었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선수들의 심박수, 젖산 수치, 스트로크 각도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대한민국 수영계의 현재이자 미래인 서도준이 서 있었다.
10년 전, 이강호의 라이벌이었던 그는 이제 포세이돈의 총괄 디렉터가 되어 있었다. 날카로운 턱선과 흐트러짐 없는 슈트 핏. 그는 여전히 시스템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결과물처럼 보였다.
“이 영상, 100번은 돌려본 것 같군.”
서도준의 시선은 중앙의 가장 큰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김포 대회 고등부 100미터 결승전 영상. 5번 레인의 한유진을 확대해 프레임 단위로 분석 중이었다.
“디렉터님, 분석 결과 나왔습니다.” 젊은 분석관이 태블릿을 들고 다가왔다. “5번 레인 한서준 선수. 신상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경기도의 폐관 직전인 수영장 소속이고… 공식 대회 기록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 건 필요 없고, 데이터만 말해.”
“네. 이상한 점은 ‘효율성’입니다. 김태석 선수의 스트로크 당 추진 거리가 평균 1.8미터인 반면, 한서준 선수는 2.2미터입니다. 특히 레이스 후반부로 갈수록 격차가 벌어집니다. 힘은 김태석 선수가 더 강하게 쓰는데, 물을 뚫고 나아가는 효율은 한서준 선수가 압도적입니다. 마치… 저항이 없는 것처럼요.”
서도준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저항을 없애는 수영, 힘이 아닌 흐름을 타는 수영. 10년 전,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고 두려워했던, 그래서 시스템의 힘을 빌려 짓밟아버렸던 바로 그 영법이었다.
“주진우…”
서도준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로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분석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감히 되묻지 못했다. 서도준은 스크린 속, 투박하지만 물고기처럼 미끄러져 나가는 서준의 모습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 선수, 특별 관리 대상으로 분류해. 모든 대회 기록, 훈련 장소, 관련된 인물까지 전부 파악해. 10년 전에 사라진 유령이 다시 나타났군. 이번에는… 흔적도 없이 태워버려야지.”
그 시각, 한서준은 다시 수영장의 차가운 물속에 있었다. 대회 우승의 기쁨은 단 하루뿐이었다. 다음 날 새벽, 주진우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네 기록, 53초 86. 우습지도 않은 기록이야.” 주진우가 풀사이드에서 소리쳤다. “포세이돈 1군 놈들은 50초대를 끊어. 지금 네 속도로는 걔들 턴 할 때 넌 겨우 반쯤 와 있을 거다.”
“어떻게 해야 그 간격을 줄일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의 훈련은 엉망인 네 몸뚱이를 ‘수영하는 몸’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선수’가 되는 훈련이다.”
주진우는 커다란 가방에서 주황색의 작은 ‘저항 낙하산(Drag Chute)’과 고무줄처럼 생긴 ‘스트레치 코드(Stretch Cordz)’를 꺼냈다.
“이게 뭡니까?”
“네 브레이크다.” 주진우는 저항 낙하산을 서준의 허리에 채워주었다. “이걸 달고 헤엄치면, 물속에서 낙하산이 펴지면서 널 뒤로 잡아당길 거다. 평소보다 두세 배는 힘이 들겠지.”
주진우의 설명은 마치 소설 속 무림 고수가 제자에게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장면 같았다. 하지만 그의 설명에는 철저한 과학적 원리가 담겨 있었다.
“수영 선수가 빨라지는 방법은 두 가지야. 스트로크의 효율성을 높이거나, 근력을 키워 물을 더 강하게 밀어내거나. 넌 이제 첫 번째를 겨우 흉내 내는 수준이다. 이제 두 번째를 시작해야지.”
그는 서준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낙하산을 달고, 네 대회 최고 속도, 즉 ‘레이스 페이스(Race Pace)’를 유지하는 훈련을 할 거다. 몸은 당연히 반발하겠지. 숨이 턱까지 차고, 근육은 비명을 지를 거야.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네 몸은 기억하게 된다. ‘아, 이 속도를 유지하려면 이 정도의 힘으로, 이런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구나’ 하고 말이야. 이건 단순히 힘을 키우는 훈련이 아니야. 극한의 상황에서도 네 효율적인 영법이 무너지지 않도록, 근육에 올바른 자세를 ‘각인’시키는 과정이다.”
서준은 허리에 채워진 낙하산을 내려다봤다. 고작 천 쪼가리 몇 개였지만, 거대한 산을 짊어진 듯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출발해. 50미터. 목표는 35초. 실패하면 다시 처음부터.”
낙하산을 달고 50미터를 35초 안에 들어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였다. 서준은 이를 악물고 벽을 찼다.
출발과 동시에 등 뒤에서 무언가 훅, 하고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거대한 손이 그의 허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듯했다. 팔을 저어도 몸은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25미터를 지나자 폐가 터질 것 같았고, 어깨 근육은 타는 듯한 통증을 일으켰다.
결국 그는 목표 기록에 한참 미치지 못한 채 벽을 찍었다.
“다시.”
주진우의 목소리에는 동정심이 없었다. 서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출발 지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또다시. 실패와 반복.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서준의 사투는 계속되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황인철이 주진우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저러다 애 잡겠습니다.”
주진우는 서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포세이돈 놈들은 지금쯤 최첨단 저압 산소 훈련실에서 편하게 앉아 훈련하고 있겠지. 우린 가진 게 없어. 놈들이 기계의 힘을 빌릴 때, 우린 원시적인 방법으로 몸을 부수는 수밖에. 저 녀석이 진짜 괴물이 되고 싶다면, 이 물속에서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나야 한다.”
그의 말처럼, 서준은 물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차갑고,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이 고통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그는 어렴풋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벽을 부술 수 있는, 오직 한 인간의 육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극한의 힘. 그 힘은 지금 이 차가운 물속에서, 브레이크를 단 채 앞으로 나아가려는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단련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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